7화. 먼저 본 사람
전화가 끊긴 뒤로 사흘, 도하는 한숨도 제대로 못 잤다. 선생은 근원을 찾지 말라 했다. 그런데 근원이 먼저, 없는 번호로 그를 찾아왔다. 묻지 말라는 자물쇠는, 이미 안에서부터 열리고 있었다.
상담소로 들어서자 세아가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 앞에 또 종이가 부채처럼 깔려 있었다. 도하는 이제 그 광경이 무서웠다. 세아가 종이를 깔면, 늘 설명이 안 되는 것이 그 위에 있었다.
“또 누구 팩트체크 했어요.” 도하가 코트를 벗으며 물었다.
“당신.” 세아가 답했다. “그리고 당신 말고도, 세 명 더.”
“9년 전.” 세아가 빛바랜 증명사진 한 장을 밀었다. 노인의 얼굴이었다. “이 사람, 남의 안 보이는 걸 봐 주는 ‘상담’을 했대요. 당신이 하는 거랑 비슷한 거. 그러다 어느 날부터—” 그녀가 기록의 끊긴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당신처럼, 서류에서 사라졌어요. 사망신고도 없이. 그냥… 없어요.”
“셋 더 찾았어요. 전부 비슷해요. 남이 못 보는 걸 봐 주던 사람들. 다, 어느 순간 기록이 뚝 끊겨요.” 세아가 고개를 들었다. “통계적으로, 이건 우연이 아니에요.”
도하는 노인의 사진을 들여다봤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눈매가 어쩐지 익숙했다. 늘 뭔가를 보고 있어서, 그래서 늘 조금 지친 눈. 거울에서 본 적 있는 눈이었다.
“…선배가 있었네.” 그가 중얼거렸다. 농담처럼 들리게 하려 했는데, 끝이 갈라졌다. “복지가 영 별로인 직업인 건 알았어요. 정년이 이런 식일 줄은 몰랐고.”
세아는 웃지 않았다. 그녀가 마지막 사람의 마지막 주소를 내밀었다. 도시 외곽, 재개발로 비워진 아파트. 근원을 직접 찾지 마라. 선생의 말이 도하의 뒤통수를 잡아당겼다. 그는 스스로에게 변명을 만들었다. 근원이 아니라 사람을 찾는 거다. 이미 없는 사람을. 변명은 늘, 가고 싶은 쪽으로 만들어졌다.
비워진 아파트는 낮인데도 어두웠다. 복도 끝 형광등 하나가 죽어가며 깜빡였고, 바닥엔 마르지 않은 물 자국이 띄엄띄엄 이어졌다. 도하는 그 냄새를 먼저 맡았다. 비 젖은 흙과 소독약. 자기에게서 나던, 그 냄새.
마지막 사람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가구도, 짐도, 사람도 없었다. 다만 현관 문틀에, 누가 일부러 새긴 것 같은 자국이 하나 있었다. 물에 번진, 매듭 모양의 검은 고리.
도하는 그 매듭을 알아봤다. 민규의 사건에서 본 것과 같은 모양. 선생이 ‘누가 키웠다’고 했던 그 흔적. 손을 뻗으려는데, 등 뒤에서 소리가 났다. 물이 아니라, 사람의 소리. 무언가를 딱, 하고 닫는 소리.
빈 방 안쪽에, 사람이 있었다. 긴 검은 코트. 이쪽으로 등을 돌린 채, 허공의 무언가를— 희미하게 빛나는 한 줌의 연기 같은 것을— 작은 금속 케이스에 천천히 봉인하고 있었다. 사무적이고, 익숙한 손놀림. 처음이 아닌 손이었다.
“건드리지 마요.” 남자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서류를 읽듯 건조했다. “그쪽 거 아니니까.”
“…누구세요.” 세아가 도하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정리하는 사람.” 남자가 케이스를 잠갔다. “당신들이 ‘해원’이라 부르는 거, 우리는 회수라고 불러요. 같은 걸 다르게 부르는 거죠. 당신들은 풀어 주고— 우리는 거둬 갑니다.”
“여기 살던 사람은요.” 도하가 물었다. 남자가 처음으로, 반쯤 고개를 돌렸다. 그늘이 얼굴 위쪽을 지웠다. “회수했어요. 3년 전에. 그쪽처럼 너무 많이 본 사람은, 본인이 통로가 돼요. 열린 채로 두면 위험하거든. 그래서 닫습니다.”
도하의 손등이 욱신거렸다. 소매 아래의 자국이, 그 말에 반응하듯 따끔했다.
“윤도하 씨.” 남자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서류상 7년 전에 죽은. 알아요. 우리 명단에, 당신은 한참 전부터 올라 있어요.” 그가 케이스를 코트 안에 넣었다. “솔직히 말하면, 당신은 저 셋이랑 급이 달라요. 저 사람들은 문틈이었고— 당신은, 문이거든.”
“근데.” 그가 돌아서며 마지막 한마디를 흘렸다. “우리가 당신을 정리하기 전에, 저쪽이 먼저 데려갈 것 같아서. 그게 좀 골치 아프네요.” 도하의 등줄기가 굳었다. “…저쪽.” “전화 왔잖아요. 없는 번호로.” 남자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아주 살짝 낮아졌다. “그거, 우리가 한 거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연락 안 해요.”
남자는 그 말만 남기고 복도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깜빡이던 형광등이 그가 지나가자 완전히 꺼졌다. 도하는 그 자리에 서서, 자기 손등을 내려다봤다. 자국은 어느새, 처음 봤을 때보다 한 마디쯤 더 번져 있었다.
선생이 왜 묻지 말라 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문을 두드리면 저쪽에서도 알아본다 했다. 그런데 도하는 두드린 적이 없었다. 두드린 건 저쪽이었다. 그리고 그를 거두려는 손은, 하나가 아니었다.
도하보다 먼저 본 사람들은 전부 ‘회수’되었다. 그를 정리하려는 손과, 그를 데려가려는 목소리 사이에서, 7년 전의 빈칸은 점점 더 깊어졌다. 닫으러 온 사람조차, 그 전화만은 자기들이 아니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