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아무 잘못 없어요
다음 날 정오, 상담소 문이 거칠게 열렸다. 세아였다. 인사도 없이 책상에 노트북부터 내려놓는 손이 다급했다. 눈 밑이 거뭇한 게, 밤을 통째로 새운 얼굴이었다.
“밤새 과거를 파셨네.” 도하가 컵라면에서 눈을 들었다. “그거, 보통 내 담당인데. 별로 안 부러우시죠.”
세아는 그 말을 들은 척도 안 했다.
“작년 여름.” 그녀가 노트북을 도하 쪽으로 돌렸다. 지역 뉴스 한 토막. 저수지 익사 사고. “민규 씨, 그 자리에 있었어요. 사망자는 같이 간 후배. 스물둘.”
도하는 사진을 들여다봤다. 거기엔 아직, 그 젖은 형체의 얼굴이 없었다. 하지만 스크롤을 멈추는 그의 손가락은 이미 알고 있었다 — 그게 결국 누구 얼굴이 될지.
“사고였대요?” “공식적으로는.” 세아가 안경을 고쳐 썼다. “민규 씨 진술— ‘손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근데 부검 소견은 달랐어요. 익사까지 최소 사오 분. 순식간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잠깐 멈췄다. “사오 분이면… 사람이 살려달라고 부를 시간이에요.”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책상 위 녹음기의 빨간 불만, 조용히 깜빡이고 있었다.
그날 저녁, 다시 찾은 민규의 집. 도하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닥부터 살폈다. 어제 거실 한가운데 있던 물 자국이, 밤새 기어온 듯 안방 문 앞 한 뼘까지 와 있었다. 그는 그 자국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후배 분.” 도하가 천천히 운을 뗐다. “저수지에서.” 민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얘긴 왜.” 도하가 한 발 다가섰다. “그날, 손 뻗으면 닿았어요?”
“아니요!” 너무 빨랐다. “못 닿았어요. 너무 멀었고, 나도 빠질 뻔했고, 나라도— 나라도 어쩔 수 없었어요. 아무도 못 구했을 거예요. 난 아무 잘못 없어요.”
아무 잘못 없어요. 사흘째 같은 말이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 순간, 안방 문 앞 물 자국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일어섰다. 도하의 숨이 멎었다. 흠뻑 젖은 그것은— 민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아도, 민규도 보지 못했다. 도하만 봤다.
그것이 민규를 향해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 누군가에게 손을 뻗듯이. 도하는 자기도 모르게 그 손끝을 따라갔다. 닿겠지. 닿을 것이다. 그런데 팔이, 허공에서 멈췄다. 닿기 직전에. 딱, 한 뼘을 남기고.
그 한 뼘 앞에서, 도하는 알아버렸다. 저건 죽은 후배가 아니었다. 후배를 구하려다 거둔 손— 그 순간 손을 뻗다 멈춘 민규 자신이었다. 민규가 평생 외면하기로 한 그 한 뼘의 망설임이, 지금 제 집 안방 앞에서 매일 밤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민규 씨.” 도하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저게 왜 당신 얼굴인지, 정말 몰라요?”
민규는 대답 대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어린애처럼.
세아에게는 안방 앞이 그저 비어 있었다. 보이는 건 귀를 틀어막고 웅크린 민규뿐이었다. 그녀는 노트북을 덮으려던 손을 멈췄다. 저건 거짓말을 들킨 사람의 몸짓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죽도록 견디는 사람의 몸짓이었다. 어제까지 붙들고 있던 ‘스토커 가설’이, 그 떨리는 어깨 앞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게 그녀 자신도 느껴졌다.
상담소로 돌아오는 길. 젖은 아스팔트에 가로등이 번져 있었다. 도하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 걸음을 멈췄다.
그것이— 민규의 얼굴을 한 그것이, 어느새 그의 뒤를 따라와 있었다. 멀찍이. 고개를 숙인 채. 민규의 집에 있어야 할 것이, 왜. 도하는 물러서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람을 타고 냄새가 끼쳐 왔다.
비에 젖은 흙냄새. 그 밑에 옅게 깔린, 소독약 냄새.
도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냄새를 그는 알고 있었다. 사건 현장 냄새가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서 나던 냄새였다. 가끔 새벽에 깨면 베개에 배어 있던, 7년 동안 어디서 왔는지 한 번도 알아내지 못한 그 냄새.
“…왜.” 도하가 작게 중얼거렸다. “왜 너한테서, 내 냄새가 나.”
대답은 없었다. 그것은 그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