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ovela
KO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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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한 걸음씩

도하는 세 발짝 물러났다. 등이 복도 끝 벽에 닿고 나서야 발이 멈췄다.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 짧은 사이에 문 앞은 비어 있었다. 도하는 그 자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라진 게 아니라, 더 안쪽으로 들어갔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요.” 세아가 바짝 따라붙었다. 아까까지의 비웃음은 어디 가고, 목소리에 직업적인 날이 서 있었다. “뭘 봤다는 거예요. 정확히 묘사해 봐요. ‘느낌’ 말고, 형태·위치·행동으로.”

데이터를 달라는 말이었다. 도하는 그 질문이 낯설었다. 이런 자리에서 사람들은 보통 그를 미쳤다고 하거나, 그냥 도망친다.

“…문 앞. 사람 하나.” 그는 한 박자 쉬고 마른침을 삼켰다. “머리부터 흠뻑 젖었고, 고개 숙이고 있었어요.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바닥은 말라 있고.” 거기서 목소리가 잠깐 갈라졌다. “얼굴은… 의뢰인이랑 똑같았어요.”

세아가 녹음기에 대고 그 말을 그대로 복창했다. 믿어서가 아니었다. 나중에 ‘이 사람이 뭐라고 지껄였는지’ 들이밀고 반박하려고, 증거를 챙기는 손놀림이었다.

문을 열어준 민규는 사흘 못 잔 얼굴이었다. 도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차마 묻지 못하고 시선을 떨궜다.

세아는 인사도 생략하고 먼저 들어가 집을 훑기 시작했다. 손끝이 창틀을 쓸고 천장을 올려다보는 동안, 가설들이 차례로 떨어져 나갔다. 결로 없음. 누수 없음. 윗집 배수 정상. 그러다 한 군데에서 손이 멈췄다.

“초인종 로그요.” 그녀가 현관 단자함을 열며 미간을 좁혔다. “누전이면 전압이 흔들리는 ‘아무 때나’ 울려야 정상이에요. 근데 기록을 보면—” 화면을 도하 쪽으로 홱 돌렸다.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정확히 0시 00분. 오차 일 초도 없어요. 사흘 다.”

“그쪽 누전 이론으론 설명이 안 되네요.” “…아직은요.” 세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도하가 닫히는 단자함을 내려다봤다. “…여기부턴 제 담당이네요.” 달가운 말투는 아니었다.

세아
세아 ― 정확히 0시 00분. 오차 일 초도 없이.

그동안 도하는 거실 바닥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보고 싶지 않은데 눈이 자꾸 그쪽으로 끌려갔다.

현관에서 거실 한가운데까지, 발자국 모양으로 물기가 옅게 번져 있었다. 닦여도 마르지도 않을 것 같은 자국이었다. 세아의 습도계는 ‘이상 없음’만 깜빡였고, 민규는 제 집 바닥의 그것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도하를 더 서늘하게 만들었다.

“민규 씨.” 도하가 천천히 물었다. “어제는 그게… 어디까지 왔었어요? 느낌이라도.” “…현관까지요.” 민규가 떨며 답했다. “그제는 문밖. 어제는 안쪽. 오늘은—”

“거실.” 도하가 자국의 끝을 눈으로 짚어 나갔다. 발자국은 안방 문 앞에서 끊겨 있었다. 그는 거기서 시선을 멈췄다. “매일 한 걸음씩. 침실 쪽으로.”

규칙이었다. 그 형체는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게 아니라, 들여보내 줄 때까지 매일 한 칸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민규가 잠드는 방이 있었다. 며칠 남았는지 도하는 굳이 세지 않았다.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번엔 녹음기를 끄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는 바닥의 자국을 따라, 한 칸씩 사진을 찍어 나가는 손이 조금 빨라져 있었다. 믿어서가 아니라— 그녀에게도 설명이 필요해서.

― 매일 한 걸음씩, 침실 쪽으로.
― 매일 한 걸음씩, 침실 쪽으로.

“하나 물읍시다.” 도하가 민규를 돌아봤다. “그 얼굴… 왜 당신이랑 똑같을까요. 죽은 사람이 왜, 산 당신 얼굴을 하고 있죠.”

민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을 떼기까지 한 박자. 그 한 박자가 너무 길었다. “…모르겠어요. 전 아무 잘못 없어요.”

도하는 대답 대신 그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아무 잘못 없어요. 아무도 ‘잘못’을 입에 올린 적 없는데, 민규가 먼저 그 단어를 꺼냈다. 사람이 무언가를 숨길 때 흔히 그러듯이. 도하는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그저 민규의 떨리는 손끝을 한 번 더 봤다.

상담소로 돌아온 새벽, 도하는 코트를 벗다 손을 멈췄다.

왼쪽 손목에 멍 같은 자국이 하나 번져 있었다. 물에 오래 불린 것처럼 푸르스름했다. 누른 적도 부딪힌 적도 없었다. 그는 한참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손가락으로 천천히 문질러 봤다. 살갗 아래가 차가웠다. 꼭, 그 형체의 머리에서 떨어지던 물처럼. 도하는 손목을 소매로 덮었다. 덮는다고 사라질 게 아니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도하
도하 ― 물에 오래 불린 것처럼, 푸르스름한.

“오래 봤구나.” 등 뒤에서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의 느릿한 가락이 아니었다. “도하야. 그건… 본 값이다. 깊이 볼수록, 그게 네 몸에 묻어.”

“씻으면 되잖아요.” 도하는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선생이 곧바로 받아 주길 바라면서.

선생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도하의 손이 저도 모르게 손목 위로 갔다. 이윽고 선생이, 도하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했다.

“씻기는 게 아니야. 쌓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