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ovela
KOEN
← 심야 괴담 상담소

1화. 0시의 손님

자정 십 분 전. 민규는 불을 끄지 않았다. 사흘째, 끌 수가 없었다.

벽시계 초침이 12를 향해 기어가는 걸 민규는 숨도 안 쉬고 지켜봤다. 0시만 되면 초인종이 운다. 화면엔 텅 빈 복도뿐인데도 운다. 경비실은 오작동이라 했고, 친구는 택배 알림 아니냐며 웃었다. 그 웃음이 떠오를 때마다 민규는 더 외로워졌다.

0시. 벨이 울렸다.

민규는 화면을 보지 않았다. 보면 또 빈 복도일 테고, 그게 더 무서웠다. 대신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검색하다 겨우 찾아 둔 번호를 눌렀다. 간판조차 흐릿하던 곳. 심야상담소.

같은 시각, 오래된 상가 지하 한 칸. 도하는 죽어가는 형광등의 깜빡임을 등지고 앉아, 식은 라면 국물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님이 아니라, 갈 데가 없어 이 한 칸에 눌러앉은 쪽이었다. 남들이 “설명이 안 된다”며 들고 오는 일을 받아주는 곳— 그게 여기, 심야상담소였다.

정확히는, 국물 표면에 비친 천장 구석을 보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거기, 아까부터 뭔가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보면 엮인다. 안 보면 없는 거다. 그는 젓가락으로 국물을 휘저어, 그 비친 형체를 일부러 흩뜨렸다. 보이는 걸 안 보이는 척하는 것— 7년을 그렇게 버텼다.

도하
도하 ― 보면 엮인다. 안 보면 없는 거다.

캐비닛 사이 어둠에서, 신문 넘기는 소리가 났다. 도하는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선생’이라 불리는 노인이었다. 거리를 떠돌던 어느 밤 말없이 이 한 칸을 내준 사람— 그게 누구인지, 왜 이런 곳을 지키는지는 도하도 아직 몰랐다. 묻지도 않았다.

“받아.” 선생이 신문에서 눈도 떼지 않고 느릿하게 말했다. “네 전화다.”

“제 전화 아닌데요.” “울리고 있잖아.”

“이 시간에 멀쩡한 전화일 리가요.” 도하는 라면 면발을 건져 올리며 중얼거렸다. “저도 정상이면 여기 안 살았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하의 휴대폰은 아직 울리지도 않았다. 선생은 울릴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신문장만 넘겼다. 도하는 그 점이 더 싫었다.

정말로, 도하의 휴대폰이 그제야 울렸다. 그는 화면을 한참 노려보다 한숨과 함께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정마다 초인종이 울려요. 근데 아무도 없어요.”

“…오작동이겠죠.”

도하가 끊으려고 손가락을 가져가는데, 목소리가 매달렸다. “오늘은, 문 두드리는 소리까지 났어요. 안에서요.” 그 한마디에 도하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 멈췄다. 안에서. 문은 늘 밖에서 두드리는 건데.

도하는 식은 라면을 천천히 밀어냈다.

“…주소 불러요.”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덧붙였다. “가서 보기만 할게요. 보기만.”

민규의 집 앞 복도. 도하가 도착했을 때, 먼저 온 사람이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여자는 인기척에도 돌아보지 않고, 드라이버로 초인종을 뜯어내는 데만 몰두했다. 옆에 놓인 작은 녹음기가 빨간 불을 깜빡였다. 도하는 그 빨간 불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장세아.”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드라이버를 한 번 돌렸다. “그쪽이, 의뢰인이 같이 불렀다는 ‘용한 분’?”

옆에 놓인 녹음기가 빨간 불을 깜빡였고, 그녀의 손은 능숙하게 부품을 분리하고 있었다. 묻지 않아도, 이 사람이 현장을 ‘조사’하는 일로 먹고살아 왔다는 게 손끝에서 읽혔다. 그제야 그녀가 도하를 위아래로 훑었다. 후줄근한 코트, 식은 라면 냄새. 거기서 말끝이 비웃음으로 흐려졌다.

“초인종 배선 누전이에요.” 세아가 분해한 부품을 들어 보였다. “습기 차면 접점이 오작동해요. 정확한 타이밍 로그는 단자함을 뜯어봐야 알겠지만— 통계적으로 이런 ‘귀신 초인종’의 구 할은 이걸로 설명돼요. 지금 정황상 누전이 구 할이에요. 나머지 일 할은 스토커거나.”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세아 너머, 현관문을 보고 있었다.

세아
세아 ― 안 풀리는 사건을 검증하는 사람.

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흠뻑 젖은 채로. 머리카락 끝에서 물이 뚝, 뚝 떨어졌다. 도하의 눈이 무심코 그 물방울을 따라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굳었다. 바닥은 말라 있었다. 한 방울도 고이지 않았다.

고개를 깊이 숙인 그것은 문에 이마가 닿을 듯 가까웠고, 세아의 어깨와 그 팔이 거의 스칠 만큼 붙어 있었다. 그런데 세아는 부품을 살피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도하만 봤다. 그런 건 늘, 도하에게만 보였다.

“…거기서 좀 떨어져요.” 도하가 낮게 말했다. “네?” 세아가 돌아봤다. “그쪽 말고.”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쪽 옆에 서 있는 거요.”

세아의 표정이 굳었다가, 곧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시작이네. 이런 식이구나. 안 보이는 걸 보이는 척—”

그것
그것 ― 그쪽 옆에, 누가 서 있어요.

그 순간, 젖은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보면 안 된다. 도하는 알았다. 7년을 그 규칙 하나로 버텼다. 시선을 돌릴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미 보고 말았다.

물에 불어 창백한 얼굴. 감긴 두 눈. 한 박자, 두 박자. 도하의 머릿속이 그 얼굴을 알아보지 않으려 발버둥쳤지만, 소용없었다.

집 안에서 인터폰으로 “누구세요” 하고 내다보는, 의뢰인 민규의 얼굴이었다. 똑같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도하
도하 ― 그 얼굴은, 의뢰인 자신이었다.

문 앞의 ‘민규’가, 감은 눈으로 도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나 좀, 들여보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