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ovela
KOEN
← 내가 그린 골목에 누군가 서 있었다

9화. 관람자

그날, 시우는 도망치는 대신 창문을 열었다. 빗물이 방 안으로 들이쳤다. 하리가 옆에서 그의 손을 잡았다. 누군지는 여전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온기만은 놓고 싶지 않았다.

시우·하리
시우·하리 ―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당신… 「관(觀)」이죠. 10년 전에 사라진. 같은 골목을 그린.

가로등 아래, 늙은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메마르고 텅 빈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올라왔다.

나는 이름을 잃었다. 얼굴도, 내가 왜 그림을 그렸는지도. 마지막까지 남은 건 이 골목 하나뿐이야. 내가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그린 것.

그럼 그 얼굴은 뭡니까. 어젯밤 저 자리에 서 있던 건― 내 얼굴이었어요.

내 얼굴? 나는 내 얼굴도 잊었어. 텅 빈 얼굴엔― 보는 사람이 자기를 비춰 넣지. 네가 나한테서 본 건, 한 번도 나였던 적이 없다.

창틀을 쥔 손에서 힘이 빠졌다. 처음 봤을 땐 어딘가 닮은 정도였다. 어젯밤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닮아 간 건 저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가 비어 간 만큼, 저 텅 빈 얼굴이 그를 더 정확히 비췄을 뿐이다.

관
― 텅 빈 얼굴엔, 보는 사람이 비친다.

문자는요. 「방금 그린 골목, 창밖을 봐.」 「이제, 네 차례야.」 그것도 당신이 보낸 거잖아요.

나는 휴대폰이 뭔지도 잊었다. …그 문자는, 나도 받았어. 십 년 전에. 골목을 다 그리고 펜을 내려놓았을 때.

시우는 되물으려다 말았다. 관의 얼굴이, 그 질문을 이미 십 년 전에 해본 얼굴이었다.

능력이라고 부르지 마라. 네 게 아니야. 골목이 진심을 받고 값을 매기는 거다. 나도, 너도, 그냥 손이었을 뿐이야.

옆에서 하리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무릎 위의 다이어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골목이 받는 게 그림이 아니라 진심이라면― 지워진 것들의 공통점은 시우의 손이 아니었다. 그의 진심이었다. 그러면 자기 손에서 나온 건 안 사라진다고 믿을 근거는,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멈추라고 했잖아. 하지만 너도 멈추지 못했지. 우린 다 똑같아. 보여주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누굴 구하고 싶어서― 자기를 한 칸씩 내어주지. 그러다 텅 비면, 자기가 그린 세계에 갇혀 다음 사람을 기다리는 ‘관람자’가 된다.

네 차례야. 이리 와. 곧 너도 다 잊을 텐데, 뭐 하러 버텨. 이리 오면, 적어도 편해진다.

시우의 발이 한 걸음, 저도 모르게 창틀 쪽으로 움직였다. 그 텅 빈 평화가, 잠깐 달콤하게 느껴져서. 무릎이 창턱에 닿았다. 젖은 손 하나가 어둠 속에서 올라와 그의 손목을 감았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아무 온도도 없었다.

하리가 뒤에서 그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았다. 발뒤꿈치를 바닥에 박고, 자기 몸무게를 통째로 뒤로 실었다. 둘이 함께 방바닥으로 넘어졌다. 손목을 잡고 있던 것이, 소리 없이 놓였다.

안 가요! 작가님은 당신이랑 달라요. 당신은 혼자 다 잊고 갇혔지만, 작가님은―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다 적어놨다고요. 한 글자도 안 빼고!

시우·하리
시우·하리 ― 안 가요.

빗소리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 관의 텅 빈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부러움인지, 슬픔인지 모를 표정이 그 메마른 얼굴에 스쳤다.

그리고 그 표정이 걷혔다. 관의 시선이 하리를 지나, 그녀가 넘어지며 떨어뜨린 것에 가서 멈췄다.

…적어놨다고. 종이에. 종이는 젖는다.

하리가 고개를 돌렸다. 다이어리는 창 아래 빗물 웅덩이에 엎어져 있었다. 표지가 검게 배어들고 있었다. 하리는 무릎으로 기어가 그것을 가슴에 끌어안고, 카디건 자락으로 표지를 눌러 닦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비명보다 무서웠다.

시우는 창을 닫았다. 유리에 손바닥을 대고 한참 서 있었다. 가로등 아래는 비어 있었다. 젖은 소매를 걷어 올리다가― 봤다. 손목에 흰 자국 다섯 개가 띠처럼 둘려 있었다. 눌린 자국도, 덴 자국도 아니었다. 문질러 봤다. 아프지 않았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거기만, 감각이 없었다.

시우
시우 ― 거기만, 아무 느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