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ovela
KOEN
← 내가 그린 골목에 누군가 서 있었다

4화. 빌린 손

나흘을, 시우는 그리지 않았다. 손이 근질거려도 참았다. 펜만 봐도 머릿속이 또 비워질까 무서웠으니까. 태블릿은 서랍에 엎어 두고, 그 위에 책을 쌓았다.

그 결심을 무너뜨린 건, 엉뚱하게도 새벽 복도에서였다. 편의점에 다녀오던 길, 1층 할머니가 계단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약봉지가 바닥에 흩어졌고, 다리를 움켜쥔 손이 잘게 떨렸다.

할머니! 어디― 어디 다치셨어요?

다리가… 안 펴져. 아이고, 미안해서 어째…

시우
시우 ― 구급차는 멀었다.

구급차는 십오 분이 걸린다고 했다. 시우는 그 손을 잡은 채 발만 굴렀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늘 그랬다. 자긴 그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쓸모없는 인간이었다. …그림. 그 단어가 떠오른 순간, 그는 이미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르고 있었다.

방에 들어선 그는 책을 쓸어내고 태블릿을 켰다. 펜을 쥐었다. 무서움도 잊었다. 괜찮아지는 그림.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환하게 웃는 그림. 욕심도 계산도 없이, 그저 간절하게. 제발, 저 사람만은.

시우
시우 ― 마음을 다해, 그렸다.

마지막 선을 긋자, 아래층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어? 어어, 펴지네? 멀쩡하네, 이거?” 할머니였다. 다리가 거짓말처럼 나았다고, 구급대원에게 손사래 치는 소리까지.

시우는 펜을 쥔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웃음이 났다. 됐다. 이 능력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어. 누굴 살릴 수도 있잖아. 처음으로, 자기 손이 쓸모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내줬는지 알았다.

세수를 하다 거울을 봤는데― 거기 비친 얼굴이, 어디서 자란 얼굴인지 알 수 없었다. 나… 어디서 왔더라. 다니던 학교도, 어릴 적 골목도, 친구들의 얼굴도, 통째로 비어 있었다. 작은 그림엔 작은 대가인가 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사람을 살린 그림은― 그의 절반을 가져갔다.

시우
시우 ― 나… 어디서 왔더라.

손에 쥔 휴대폰이 울었다. 하리였다.

작가님. 방금… 또 그렸죠.

대답할 말이 없었다. 시우는 비틀거리며 창으로 다가가 커튼을 젖혔다. 가로등 아래 그 사람이 또 한 걸음 다가와 있었다. 이제 얼굴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일 만큼. 그리고 그 윤곽이, 어쩐지 낯설지 않아서― 시우는 더 무서웠다.

관
― 그 윤곽이, 어쩐지 낯설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