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식은 커피
커튼을 놓쳤다.
천 자락이 제자리로 떨어지며 골목을 가렸다. 시우의 등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심장이 갈비뼈를 안에서 두드렸다. 우산도 없이 정확히 자기를 올려다보던 그 얼굴이, 눈꺼풀 안쪽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벽에 등을 붙인 채 숨을 골랐다. 그러다 겨우, 손끝으로 커튼을 다시 들췄다. 확인해야 했다. 아까 본 게 진짜였는지.
골목은 없었다. 늘 보던 풍경이었다. 가로등 하나, 재활용 분리수거함, 옆 빌라의 불 꺼진 창. 비도, 네온도, 그 사람도 없었다. 시우는 멍하니 그 지독한 평범함을 바라봤다.
…꿈이었나.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는 휴대폰 메시지함을 열었다. 모르는 번호도, 『이제, 네 차례야』도― 거기 그대로 있었다. 지워지지 않은 채로.
아침은 거짓말처럼 평범하게 왔다. 태블릿을 깨우자―어젯밤 그 골목이, 빗줄기 하나까지 그대로 저장돼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림은.
저장 버튼은 누르지도 못했는데. 시우는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손을 멈췄다. 삼 년째 무료 연재란에 올리던, 독자라곤 손에 꼽는 웹툰. 그 연재란을 열자 어젯밤 날짜로 골목 한 장이 올라가 있었다. 업로드 시각까지 또박또박 찍혀 있었다. 올린 기억이 없었다.
이상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제 저녁에 뭘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라면이었나. 누구랑… 아니, 혼자였나. 하루의 한 귀퉁이가, 누가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비어 있었다.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고 넘겼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올린 적 없는 그 골목 그림에, 댓글이 하나 달려 있었다.
작가님, 이 골목 저 알아요. 근데… 여기 원래 없는 골목이에요.
시우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어젯밤 머릿속에서 막 꺼내 그린 골목이었다. 올린 적도, 보여준 적도 없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안다고? 그것도, 없는 골목인 걸 안다고?
심장이 다시 빨라졌다. 그 옆에서, 아주 작고 못된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 진짜일까. 정말, 내가 그리면… 되는 걸까.
책상 위, 어젯밤의 식은 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시우는 펜을 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갓 내린 따뜻한 커피를. 장난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진심으로. 손이 시렸고, 따뜻한 게 마시고 싶었다.
컵에서, 김이 올라왔다. 시우는 숨도 쉬지 못하고 그것을 봤다. 천천히 손끝으로 잔을 감쌌다. 뜨거웠다. 진짜였다. 손바닥에 온기가 번지는데, 등줄기엔 소름이 돋았다. 웃음과 공포가 동시에 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머릿속 어딘가가 또, 소리도 없이 비었다. 어제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이름도, 목소리도, 통화 자체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매끈하게 사라졌다.
골목 하나가 창밖 세상을 통째로 갈아엎었을 때, 사라진 건 어제 저녁 메뉴 하나였다. 커피 한 잔은, 사람 하나를 가져갔다. 시우는 잔을 내려놓았다. 셈이 맞지 않았다.
검게 꺼진 모니터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낯설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휴대폰이 짧게 떨었다. 하리에게서 온 쪽지.
작가님, 혹시… 뭔가 자꾸 잊어버리고 있지 않아요?
시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을 봤다. 가로등 아래, 그 사람이 다시 서 있었다. 어젯밤보다― 한 걸음, 가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