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ovela
KOEN
← 내가 그린 골목에 누군가 서 있었다

1화. 새벽 세 시의 화실

마감까지 이틀. 빈 칸은 여섯.

시우는 펜을 쥔 채 책상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모니터 불빛만 푸르게 방을 적셨고, 식은 커피에선 김도 향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새벽 세 시.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시간이라고, 그는 늘 생각했다. 이 시간엔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못 그리면, 못 그리는 거였다.

한 컷도… 못 그렸어.

중얼거림이 빈방에 떨어졌다가, 아무 데도 닿지 못하고 흩어졌다.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늘 그랬다. 아마추어 게시판에 삼 년째 무료로 올리는 연재였고, 조회수는 두 자릿수에서 멈춰 있었다. 데뷔라는 두 글자를 몇 년째 손끝에 매단 채, 시우는 좁은 방 안에서 혼자 늙어 가고 있었다. 그릴 게 없을 때 도망치는 곳은 언제나 그림이었고― 오늘은 그 도망칠 데마저, 텅 비어 있었다.

창밖 도시의 불빛이 빗물처럼 유리에 번졌다. 멍하니 그걸 보던 그는, 거의 습관처럼 태블릿에 선을 그었다. 의미도 계획도 없이. 그런데 손끝에서 떠오른 건, 어째선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비 내리는 좁은 골목. 젖은 아스팔트에 번지는 네온 간판. 어느 도시인지도 모를, 그러나 이상하게 그리운.

시우
시우 ― 그날 밤, 시우는 가본 적 없는 골목을 그렸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빗줄기 하나하나, 간판 글자 한 획까지. 막힘이 없었다. 그릴 줄 몰랐던 게 아니라, 어딘가서 본 걸 베끼는 사람처럼. 펜이 화면을 긁는 소리만 사각사각 이어졌고, 그 소리에 홀린 듯 시우는 시간을 잊었다. 십 분쯤 지났을까. 정신을 차렸을 땐, 화면 가득 낯선 골목 하나가 완성돼 있었다.

…뭐야 이거. 나 이런 것도 그릴 줄 알았나.

피식 웃음이 났다. 며칠 만에 처음 짓는 웃음이었다. 손끝이 저릿했다. 그동안 막혀 있던 무언가가, 방금 막 뚫린 것 같은 기분. 저장 버튼으로 손이 가던 그 순간―

주머니 속 휴대폰이 윙― 길게 울었다. 이 시간에? 모르는 번호. 광고겠지, 하고 열었다가, 그는 그대로 굳었다.

『방금 그린 골목, 창밖을 봐.』

시우
시우 ― 『방금 그린 골목, 창밖을 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방금 그린 골목. 그 단어가 화면에 적혀 있었다. 장난이라기엔 타이밍이 너무 정확했다. 그가 방금 뭘 그렸는지, 이 방에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시우 자신조차 십 분 전엔 몰랐던 골목이었다.

손에서 펜이 미끄러졌다. 펜촉이 화면을 한 번 긁고 지나갔고, 구석에서 가느다란 막대 하나가 조용히 차올랐다가 사라졌다. 시우의 눈은 휴대폰에 붙어 있었다.

…누구야. 누가 보낸 거야, 이거.

답장을 쓰려고 손가락을 올렸다가, 내렸다. 묻는 게 무서웠다. 대신 그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발소리조차 내기 싫어 까치발로, 한 걸음씩 창가로 다가갔다. 여긴 평범한 주택가 2층. 창밖엔 늘 같은 골목, 같은 가로등이 있어야 했다.

커튼 끝을 손끝으로 잡았다. 차가웠다. 한 번 숨을 골랐다. 젖혔다. 숨이 멎었다.

― 창밖엔, 방금 그린 그 골목이 있었다.
― 창밖엔, 방금 그린 그 골목이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맑던 하늘이었는데. 젖은 아스팔트 위로 붉고 푸른 네온이 길게 번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러나 십 분 전 그의 손끝에서 막 태어난 바로 그 골목이― 창밖에, 진짜로 펼쳐져 있었다. 익숙한 주택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떨리는 눈으로 골목 끝을 더듬던 그때, 가로등 아래에 누군가 서 있었다. 우산도 없이,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그리고 그 사람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확히 그의 창문을 올려다봤다.

???
??? ― 우산도 없이, 그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윙―. 휴대폰이 다시 울었다. 시우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봤다.

『이제, 네 차례야.』